Wednesday, March 21, 2007
보내지 못한 편지
참으로 오랜만에 편지 글을 적어 봅니다. 아마도 이 편지를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직은 그대에게 편지를 보낼 염치가 없는 까닭입니다.
저번에 졸업하는 날 보내주신 축전은 정말로 기뻤습니다. 다시 친근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며칠씩이나 들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앞으로 오십 년을 더 살아도 그대 얼굴을 열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금새 시무룩 해졌습니다. 그대와 나의 인연이 아직 남아있더라도 그 정도의 인연일 거라고 생각하니 다시 시무룩 해지더군요.
종종 처음 보는 어린 애들이 "첫사랑이 누구예요?"라고 짓궂은 질문을 던집니다.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운을 띄우고는 그대의 이름을 간만에 한번 불러봅니다. 그러한 작고 앙상해서 볼품없던 사람이 있었다고 말해봅니다. 얼굴은 밝지만, 가슴은 무거워집니다. 그대의 안부가 다시금 궁금해지는 까닭입니다.
요즘에는 어릴 때 미쳐 읽지 못했던 글들을 찾아서 읽어보는 재미에 빠져있습니다. 지금은 피천득님의 '인연'이라는 수필을 읽고 있습니다. 담백하고 깔끔해서 별 맛은 없지만, 저자의 연륜에서 나오는 멋이 있어서 그 재미가 솔솔 합니다.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한참을 생각하고는 하여서 책을 편지 보름이 넘었건만 막상 읽은 페이지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깊게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그대도 한번쯤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그 글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를 따서 그대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봅니다. "녹음이 짙어가듯 그리운 그대여."
나는 그대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습니다. 다음에 길을 걷다 마주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르는 사람인척 서로 스쳐 지나가도 그대가 그때처럼 밝게만 웃고 있다면 한량없이 기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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